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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조선 본문
2016/06/19 - [Life] - 조선의 못난 개항
- 문화
- 왜 조선의 도자기가 중국/일본과 달리 주류가 되지 못했는가? 경제력이 약해 산업화 할 수 없고, 수출에도 관심이 없어서
- china가 도자기인 거야 알고 있었지만 일반 명사 japan이 옻칠인 건 몰랐음
- 조선 백자의 흰 색은 회회청(코발트)를 수입할 돈이 없어서 ㅜㅜ
-
우키요에야 워낙 유명하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음
- 조선 회화는 18세기가 되어서야 조선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
- 이전에는 중국의 이상향 - 무릉도원 - 이 대부분의 주제
-
구황작물
-
고구마
- 최초 소개는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조엄(1719~1777)
- 전국적으로 퍼져 구황작물 역할을 제대로 한 시점은 20세기 초
-
감자
- 1824년 만주 간도 지방을 통해 전래
- 서울에는 1883년 선교사에 의해 최초 재배
- 중국과 일본은 두 가지 다 16~17세기
- 일찍 전래가 되어 재배했다면 인구 증가에 큰 역할을 하고, 19세기의 대흉년도 이겨낼 수 있었을 지도 모름
-
고구마
-
1543년 표류한 포르투갈인 선원들이 일본 다네가시마에 떠밀려 옴
- 다네가시마 영주 도키타가는 철포를 구입해 1년 후 수십 정의 철포 제작 성공
- 이 때부터 포르투갈 상인들은 매년 7~8월 서남 계절풍을 통해 일본에 왔다가 10~11월 동북 계절풍을 이용해 규슈를 떠남
- 예전에 베네치아의 개성상인을 읽을 때 봤던 일본에서 만들어 유럽으로 역수출한 총 다네가시마의 어원이 바로 이 지명
-
한글
- 한글 전용 세월이 채 100년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자의 부활을 꿈꾸는 세력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영어에도 치이고 있는 상황
- 결국 영어(한문)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소수의 세력이 지식과 권력을 독점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음
- 영어가 입시나 입사에 중요한 평가 지표가 된지 오래이고, 외국어 고등학교 출신들이 이미 사회 요직에 자리한 걸 보면 상당 부분 진행됐다고 봐도 무방할 듯
-
데라코야
- 에도 시대 서민교육기관
- 17세기에 각 번에서 설립했고 19세기 초 전성기
- 무려 남녀공학 - 하지만 선진국 중에서는 거의 바닥에 해당하는 여성의 지위를 보면 또 뭔가 말이 안 맞는 듯?
- 지식의 대중화 측면에서 서당과 현격한 차이
- 출판업의 발달 차이와 함께 양국의 문화적 격차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
-
이조전랑직
- 이조전랑직 폐지는 영조 시절. 탕평책의 일환으로 1714년 이랑통청법 폐지
- 300년 된 규례인 전랑의 제도를 폐지하고 이조전랑직에 대한 천거권을 재상에게 넘겨줌
- 그러나 이 개혁을 통해 낭관의 인사권이 재상에게 속하게 되면서 왕권이 약화되었다는 시각이 있음
- 재상을 견제할 전랑과 삼사의 힘이 약해졌기 때문
- 재상권이 강화되면서 결과적으로 정조 이후 탄생한 세도정치의 씨앗이 되었다는 견해(기시모토 미오, 미야지마 히로시)
- 일본 사학자들의 연구 결과이므로, 그냥 대놓고 받아들이기는 좀 그렇다
-
과거
- 과거 시험에서 시를 쓰고 문장을 만드는 능력을 중시했던 이유는 중국과의 외교때문
- 중국 사신에게 조선의 문화적 성취를 보여줘, 사신들이 귀국 후 조선이 얼마나 문명국인지 보고하고, 그에 따라 조선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기 때문에 시문 창작 능력이 나라를 빛내는 길이라는 이야기
- 국정 운영 능력과는 전혀 무관한 중화주의 사고의 산물.
-
하멜
- 하멜이 표류했을 때 14년 동안 아무 유용한 정보를 얻지 못한 조선 관리
- 탈출한 하멜 일행을 만난 일본 나가사키 지사는 체계적으로 54가지 질문을 던져 하멜 일행에게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 - 국적, 어디서 왔는지, 난파 지점, 배의 대포수와 적하물, 한성으로 압송된 이유, 조선의 산물, 군사장비, 군함, 종교, 인삼 등을 하루 만에 수집
- 개인 차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 시스템의 차이
- 지금이라고 크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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