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를 마치며 - 왜 유럽 여행을 가는가? 본문

Travel/Europe 07.03.02~06.09

여행기를 마치며 - 왜 유럽 여행을 가는가?

halatha 2008. 4. 1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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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럽 여행을 가고, 왜 그걸 정리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자문 자답. 2월 21일 일기

2007-02-21
여행기를 기록한 파일을 날리고 다시 정리를 하려니 허탈하고 짜증이 났다. 500MB짜리 파일을 제대로 못 다루는 워드에 신경질이 나기도 하고 백업을 해두지 않은 내 자신을 탓하기도 하며 언제 다시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왜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는걸까? 이걸 정리한다고 나에게 돌아오는 것도 없는데. 이미 카페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그건 아니다. 입 싹 씻고 정리하면 어차피 날 기억할 사람은 얼마 없다. 그렇다면 왜? 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귀중한 돈과 시간을 들여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사진과 동영상, 여행기를 정리하고 또 다시 가기를 원하고 그리워하는가? 그 답을 오늘 호시노 미치오에게서 얻을 수 있었다.

왜 유럽 여행을 가는가?
해외 여행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이 된지 오래이다. 설이나 추석 같은 연휴가 되면 이제 뉴스에서는 귀성객 대신 해외 여행으로 북적이는 공항을 보여주는 것이 관례적인 일이 되었다. 그렇다면 세계 곳곳에서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여행지는 어디일까? 통계 자료가 없어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유럽 여행이 아마 선두를 다툴 것이다. 대학 신입생이 되면 여름방학에 유럽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마치 하나의 관행이 된지도 십여년이 훌쩍 넘은 것 같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유럽 여행을 가는가? 에펠탑이나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한 번 올라가 보고 콜로세움에 실제로 들어가 보기 위해? 포트벨로에서 줄리엣 로버츠와 휴 그랜트의 기억을 떠올리고 프라하에서 전도연과 김주혁을 기억해보기 위해?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보고 빈에서 발레나 오페라, 런던에서 뮤지컬을 감상하기 위해? 밀라노에서 페라가모 구두를 한 번 싸게 사보기 위해? 알프스에서 잘 보존된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기 위해? 사람에 따라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다르겠지만 이 모든 것이 다 해당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나에게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호시노 미치오의 표현을 따르면 그것은 사람의 시간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현재의 세계를 지배하는 기본 이념을 만들어낸 그리스 로마의 세계. 세계의 주요 종교 중 하나인 기독교의 성장. 중세 암흑기를 이겨낸 르네상스의 시대. 이슬람과 기독교의 만남과 그 치열했던 대결. 세계를 제멋대로 휩쓴 대항해 시대. 현대 기계 문명의 모태가 된 산업 혁명. 그리고 세계를 전쟁의 포화로 몰아넣었던 1, 2차 세계 대전. 이 모든 것이 유럽 대륙 안에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편에 있던 우리에게는 활자와 사진의 2차원에 갇혀있던 역사가 유럽에 발을 딛는 순간 눈앞의 생생한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의 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그 기분을 위해 유럽에 가는 것이다. 유명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낡은 돌다리, 쓰러질듯한 건물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스며들어 있고 그 시간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거리의 카페에서 마시는 한 잔 커피에, 뒷골목 주점에서 마시는 한 잔 맥주도 그냥 스쳐 보내지 않게 된다. 우리나라의 발전한 모습이 감탄이 될 수는 있어도 유럽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감동이 되지 못하는 것은 이런 감정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너무나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유럽 대륙은 그렇게 넓은 곳이 아니다. 우리가 워낙 좁은 반도의 반밖에 안 되는 땅에서 살아서 그렇지 세계 지도를 펼쳐보면 유럽 대륙의 크기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유럽 특유의 그 공기는? 다른 여행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난 오늘도 그 때의 기분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기를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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