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열전, 선조 본문

Life

군주열전, 선조

halatha 2009. 11. 1. 23:55
2009.11.01

왠지 빌리려는 책마다 모두 대출중이라 그냥 제목만 보고 빌렸는데, 완전히 잘못 선택한 책. 어제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빨리 빌려서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는데, 다음부터는 책 빌릴 때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부터 좀 어이없는 논리로 선조를 치켜세우면서 책을 시작한다. 선조 사후 추존된 존호가 38자인데, 이렇게 긴 존호는 영조의 50자에 이어 두 번째로 긴 존호이고, 세종의 경우 14자밖에 안된다면서 사관들만의 평가로 놓고 보면 세종보다 두 배 이상 훌륭한 임금이었다는 말일 수도 있다고. 시작부터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기왕 빌린 책이기도 하고 악한 친구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는 것처럼 잘 못 쓴 책이라도 반면교사를 얻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읽어나갔다.
저자는 대강 다음과 같은 논리로 선조의 훌륭함을 추켜세운다. 첫째, 선조는 원래 왕이 될 운명이 아니었으나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왕이 되었고, 왕이 된 후에는 나름대로 노력했다. 둘째, 그의 치세중에 당쟁이 본격적으로 격화된 것은 맞지만 사화를 통해 사대부들의 목숨을 함부로 앗아가는 일은 없었다. 또, 그는 인재를 중요시해서 다른 시기와 달리 뛰어난 인재들 - 저자에 따르면 이황, 기대승, 이이, 정철, 유성룡, 이덕형, 이항복, 이순신, 허준 등 - 을 많이 등용했다. 마지막으로 현실정치의 논리로 볼 때 소국의 제왕으로서 영토를 지켜낸 것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만하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저자가 선조를 높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갖다 붙힌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선조가 처음부터 왕이 될 생각은 커녕 후보에도 들만한 위치가 아니었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배경이 왕이 된 후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기반이 될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제왕학을 익히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것이 동정의 여지는 될 수 있지만 왕이 된 후의 업적을 평가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는 없다. 저자가 기술했듯이 선조는 임진왜란이라는 망국의 위기 속에서 뭐가 됐건 백성을 버리고 명나라로 망명할 생각만 끊임없이 했던 비겁한 군주에 불과하다. 한 나라를 책임지는 위치에 이르렀고, 임진왜란 당시 이미 이십여년이 넘는 세월을 군주의 자리에 있으면서 실무를 익혔는데도 막상 나라의 위기앞에서 모든 것을 버린 자에게 그런 평가는 너무나도 큰 변명일 뿐이다. 종계변무의 업적? 저자가 역시 썼듯이 백성들이 살아가는데 이성계가 이인임의 자식으로 기술되었건 개의 자식으로 씌여있건 무슨 관계가 있는가?
둘째로 어렸을 때부터 영명했고, 왕이 된 후에도 조강과 석강을 통해 성리학을 익히는데 힘썼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인재를 등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인재들이 해놓은 것이 결국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미 당시의 성리학은 이미 뜬구름잡는 소리만 해대며 백성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는 또 하나의 권문세족, 훈구파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순신을 등용한 것이 선조라고 했는데, 도장만 찍은 것도 선조인지는 모르겠지만 익히 알려진 것처럼 - 저자 또한 인정했듯이 - 선조는 이순신을 의심하고 파직하고 견제했다. 솔직히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의 대를 끝으로 사라지고 명과 왜가 대동강 정도를 기점으로 나눠가졌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그밖의 인물들이라고 해봐야 대부분 당쟁의 시발점일 뿐이고, 선조의 인재보는 눈은 결국 어떤 제대로된 기준이 없이 호불호에 따른 등용이었을 뿐이었다. 저자가 기술한 것처럼 정여립과 조헌에 대한 선조의 평가는 그냥 자기 성격에 맞지 않으면 배척했던 것 뿐이었다.
저자의 배경 - 조선일보 기자 출신 - 때문에 의심했던 바였지만 내용 중간 중간에 뉴라이트의 x같은 역사관이 개입된 것으로 보이는 글들 - 예를 들어, 김구와 여운형은 감정때문에 과대평가된 것일뿐이라는 - 이 삽입된 것이 더욱 이 책의 신빙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군주열전이라는 시리즈를 찾아봤는데, 정조에 대한 서평들을 찾아보니 이 저자의 평가는 '열등감에 빠져 국정운영을 실패한 군주', '성리학 근본주의로의 회귀'라고 했으며 정순왕후는 정조와 척을 지려하지 않았고, 국가의 안위를 위한 대의명분이 그녀에게 있었다고 했다고 하니 이런 대목에 이르면 과연 제정신으로 역사를 보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선조가 일반적인 인식처럼 암군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그는 단연코 실패한 군주이며 조선이라는 나라의 멸망을 400년 가까이 앞당겼을 지도 모를 무능력한 군주였고, 당쟁의 문제점을 인식했을지는 모르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없는, 최대한으로 평가해도 평범한 서생으로 살았어야 할 인물이었다. 이승만이 그랬던 것처럼 국가의 대위기 앞에서 거짓말을 하며 백성을 버리고 간 인물의 평가를 이런 식으로 호도하려는 것은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