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눈물, 백년의 침묵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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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눈물, 백년의 침묵

halatha 2010. 4. 1. 22:01
2010.03.31~04.01

해외 여행을 하면 우리나라와 외국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아쉬워 하는 것 중 하나가 우리나라에는 왜 그렇게 웅장한 문화 유산이 없을까 하는 점이다. 600여년간 수도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서울에 있는 궁궐들도 그런 아쉬움의 대상들 중 하나인데, 규모 자체가 엄청나게 크지는 않았지만, 사실 지금 남아있는 것 처럼 초라한 정도는 아니었다. 한국 전쟁으로 다 파괴된 것일까? 물론 전쟁의 포화에도 상처를 입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바로 그 답이 이 책에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궁궐 중에서도 정확히 조선 말기부터 대한 제국을 거쳐 일본 식민지 시대와 광복 이후까지 약 100여년에 걸쳐 궁궐이 어떻게 훼철 撤 되었는지 추척한 결과물이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는데, 저자들 중 한 명이 서문에서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산문집 <호미>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는 부분을 싣는다.
"나는 왜 흘러간 시간은 절대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공간은 고정돼있는 것처럼 여겨왔을까"
그 말처럼 생각해보면 고정되어 있는 건축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옛날 건물로 막연하게 인식하는 보통 사람들의 시각과 달리 궁궐 역시 시간과 주변 공간과 함께 호흡하며, 계속해서 그 외관 뿐만 아니라 쓰임새도 변화하고, 종국에는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궁궐들은 그 아픈 역사를 그대로 겪으면서 역시 아픈 경험만을 가졌고, 대부분이 소실되어 이제는 복원하려고 해도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책을 읽어보면 경복궁, 창경궁, 경운궁, 운현궁, 경희궁, 풍경궁 등등 거의 모든 궁궐의 모든 건물이 원형대로 보존된 것은 없다.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일본의 식민 지배 전략에 의한 고의적인 훼철인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그나마 사람들이 조금 알고 있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전락시킨 것인데, 이것이 이토 히로부미의 식민 지배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일본에 놀러갔을 때 우에노 공원에 있는 박물관, 미술관을 보면서, 당시에는 얘들도 선진국이라 이렇게 큰 공원에 사람들이 와서 쉴 수 있게 하고, 또 문화 시설들을 설치했나 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우에노 공원은 원래 에도 바쿠후의 에도 성을 중심으로 약한 방향을 진호하는 사찰 중 하나인 보리사가 있는 곳이었으며, 메이지 정부가 에도 바쿠후와 전투를 벌였던 곳 중 한 곳이다. 메이지 정부는 승리를 거둔 후 에도 바쿠후가 소유하던 많은 땅과 성들을 입찰에 붙여 팔았고, 보리사가 있던 곳은 우에노 공원으로 바꿨다. 결국 승리를 거둬 빼앗은 전리품으로 과거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들의 이념을 덧칠하는 작업을 한 것인데, 그것을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후에 그대로 다시 실행했던 것이다. 궁궐에서 박람회를 열거나, 동물원 식물원을 만들고, 군대의 막사로 사용하거나 병원으로 전용해 그 위신을 떨어뜨리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그것을 지워나간 것이다. 심지어는 요정으로 사용되거나 호텔의 입구로 사용이 되는 등, 수많은 궁궐의 건축물들이 팔려나가고 사라져서 각 궁궐들은 원래의 1/10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일본 식민 지배가 끝난 후에도 사람들은 역사에는 무관심해, 운 좋게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이 된 건물들이 있었어도 다시 해체해서 팔거나, 사유 재산이 되어버려 회수할 수도 없는 상태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언제나 즐거운 부분이 없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더 그런 비애감이 들었다. 끔찍하거나 마음 아프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지만, 담담하게 하지만 열심히 추적하는 저자들의 글이 오히려 더 그런 기분이 강하게 들도록 만든 것 같다. 이제 국사는 선택 과목이 되어버렸으니 안 그래도 역사공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어린 친구들은 이제는 아예 존재조차 모르게 될 것이다. 과연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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