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와 사랑

2012/02/02 17:19
지와사랑
카테고리 소설 > 독일소설
지은이 헤르만 헤세 (보성출판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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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31~02.01
지와 사랑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듯이 이성과 감성을 상징하는 단어이고 소설 속에서 이것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통해 나타난다. 어렸을 때부터 오로지 이성적인 진리의 길을 추구하는 나르치스와, 부모에게 버림받았단 생각으로 부서질 듯한 감성을 지닌 채 살아가는 골드문트. 두 인물이 각각의 표상을 나타내기 위해 너무 극단적인 설정 -
나르치스는 오로지 진리 추구만을 생의 목적으로 하고 그나마 인간적인 감정은 나르치스에게만 드러낸다, 골드문트는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을 하는 인물로 간단히 말해 여자만 만나면 잔다 -_- (물론 이런 감성이 예술의 길로 이끌지만)
- 을 했다는 생각은 들지만 마지막에 하나로 모이는 부분을 위해서는 또 그렇게 멀리서 다가오도록 해야 좀 더 극적인 느낌이 날 수 도 있을 것 같다.
간단한 줄거리는, 나르치스는 자신보다 몇 년 뒤 수도원에 들어온 골드문트를 보고 그의 내면을 파악해 이성의 길에 맞지 않는 사람임을 알고 수도원 밖으로 나가도록 스스로 깨닫게 한다. 골드문트는 나가서 마음내키는대로 살다가 어느 교회의 마리아상을 보고 조각가에게 조각을 배우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자 조각가의 요청을 뿌리치고 다시 방랑에 나선다. 한눈에 반한 백작의 애인과 역시나 사랑을 나누다가 걸려 죽을 위기에 처한 순간, 고해 신부로 온 나르치스는 백작에게 큰 대가를 치르고 골드문트를 살려서 데려가게 된다. 수도원으로 다시 들어간 골드문트는 그 동안의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나르치스등을 모델로 하는 예술품을 만들게 된다. 점점 자신의 내면이 고갈되어 가는 것을 느끼던 골드문트는 다시 한 번 방랑에 나서지만 이제는 더 이상 예전같지 않아 몸도 마음도 지쳐 수도원으로 돌아오고 결국 죽게 된다.
나르치스는 초반부와 후반부에 나오고 이야기의 중심을 골드문트 - 즉 감성의 흐름이 담당한다. 하지만 그 감성이 처음에 세상으로 나가는 계기도, 마지막에 돌아가는 곳도 나르치스, 이성과의 합일점, 수도원이다. 데미안에서도 그랬지만, 고난을 겪으면서 성장을 하는 인간이 결국은 무언가를 깨닫는 지점은 헤세에게는 이성으로의 회귀인 듯 싶다. 마치 세상의 종말이 온 듯한 세계 대전의 포화속에서, 죽음을 피해 스위스로 갔던 헤세에게는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포스트 모던이 자리잡기 이전의 시기이기도 했으니 이성에 대한 믿음이 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돌고 돌아 이성에 대한 믿음이 이미 휴지조각처럼 버려진 지 오래이고, 그 시절로부터 거의 백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여전히 (전쟁은 아니더라도) 이런 저런 혼란속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물론 국지전은 심심찮게 일어나고). 과연 헤세가 지금 세상에 온다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쓸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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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2012/02/02 17:19
레미제라블
카테고리 소설 > 프랑스소설
지은이 빅또르 위고 (동서문화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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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30~31
읽고 나니 당시의 프랑스의 사회상이 잘 녹아들어 마치 우리의 60~70년대 시대극과 같은 느낌이었다. 사회적 변혁의 시기로 볼 때는 비슷한 혁명의 시기이니 100년이 넘는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느낀 듯 싶다. 책을 읽고 나서 알았는데, 전집 6권짜리가 있었다. 내가 읽은 한 권짜리는 그냥 예전 아이들을 위한 축약본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나 하고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어쩐지 아무리 번역본이라도 문장에서 큰 감흥을 느낄 수 없단 생각을 했는데. 한편으론 당시 파리/프랑스에 대한 설명이 너무 지나쳐 읽다가 흐름을 놓치고 지루해지기 일쑤란 평도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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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2012/01/19 17:16
데미안(세계문학전집44)
카테고리 소설 > 소설문고/시리즈
지은이 헤르만 헤세 (민음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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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2~13, 16~18
와이프가 어린 시절에 안 읽어봤냐면서 궁금해했던 그 책을 드디어 읽었다. 읽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 기억이 나지 않으니 다시 읽은들 손해 볼 것 없었다.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성장하면서 겪는 정신적인 성장통, 자아의 형성에 대한 것이다. 아마 이런 이유로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런 얘기는 그 시절에 읽기에는 따분한 종류의 것이기도 하고, 교수나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선택되었다면 왠지 모를 반항심마저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 읽어보니 정말 어린 시절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나도 그랬지 하며 공감이 드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나도 이미 기성 세대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것은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삶의 무게로 힘들어하는 어른들에게 더 맞는 책일 수도 있다. 싱클레어의 이야기가 비록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를 거치면서의 이야기가 배경이지만, 사회 활동의 준비기간이 훨씬 길어진 현대임을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는 10대 뿐만아니라 최소한 요즘의 20대, 30대 초반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인생 삼모작이라는 말이 나도는 지금 평생에 걸쳐 다시 한번 돌이켜봐야할 수도 있다.
삶은 나만 힘든 것이 아니고 진정한 자신을 볼 때만, 틀을 깨야만 자립할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정말 어려운 진리. 이것을 20대 초반에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어차피 이 단계는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새가 알을 깨고 나와도, 그 세계는 정말 좁은 곳이었고 훨씬 더 크고 거친, 훨씬 더 강한 새들이 즐비한 다른 세상으로 나왔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그 때까지의 모든 고민, 혼자서 세상을 짊어진 것 같았던 생각은 겨우 또 다른 세상에서의 생활을 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음을 알았을 때, 그 때부터가 진정한 삶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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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의 꼽추

2012/01/13 23:57
노틀담의꼽추
카테고리 소설 > 소설문고/시리즈
지은이 빅토르 위고 (청목,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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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0~12
며칠간 오만과 편견을 읽어보다 너무 읽기가 힘들어서 - 정말 내가 흥미없는 분야에 대한 끊임없는 수다를 듣는 느낌 - 그냥 노틀담의 꼽추를 선택했는데, 역시 초반에는 읽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중반부를 지나면서 왜 그런지 탄력이 붙기 시작해 금새 읽을 수 있었다.
이야기의 중심은 역시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한 파멸이란 생각이 든다. 페뷔스의 순전한 육체적인 욕망, 클로드 부주교의 일생의 수행을 망가뜨린 욕망, 수녀의 잃어버린 자식에 대한 사랑과 비뚤어진 분노의 폭발, 에스메랄다의 눈먼 사랑, 카지모도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과 그로 인한 고통. 하지만 그 안에서 각자의 이야기는 폭발력을 가지면서 읽는 사람에게 다가오는데, 카지모도의 비극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줘도 돌아오는 더 큰 괴로움에 읽는 것마저 힘들어질 정도였다.
몇년 전 현대식으로 재해석된 뮤지컬을 보았을 때는 전체적으로는 좋았어도 사실 내용이 크게 다가오는 것은 없었는데, 다시 한 번 볼 기회가 생긴다면 더 제대로 느끼면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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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탄생

2011/08/24 19:46
생각의탄생다빈치에서파인먼까지창조성을빛낸사람들의13가지생각도?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지은이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에코의서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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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2~14, 22~23
책은 두꺼우나, 구성은 단순하다. 한 마디로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는가에 관한 책으로, 13가지의 도구 -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 - 를 통해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많은 과학자, 예술가 등의 예를 들어서 설명한 것이다. 각각의 사례는 유명한 것들이 많아 예전에도 알고 있던 것이 많고, 워낙 풍부한 예를 통해 설명을 해서 읽기는 쉬웠다. 다만 읽기 쉽다고 여기에 나온 도구들을 직접 사용하기 쉬운 것은 절대 아니다. 결국 끊임없는 의식적인 훈련을 통해서만 각 도구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저자들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런 도구들을 이용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결국 교육의 개혁이다. 각각의 분야가 전문화되면서, 이른바 generalist는 사라져갔고, 몇몇 특출난 인물이 아닌 이상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지각을 나타내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통합 교육이 필요하고 그 교육을 위해 필요한 것이 13가지 도구들이며 많은 뛰어난 인물들을 통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분명 저자의 주장은 맞고, 또 시대의 흐름이 이것을 요구하지만(i.e. 스티브 잡스, MIT media lab이나 이것을 보고 따라 만든 서울대 융합 대학원등), 문제는 이런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관련 제도뿐만 아니라 결국 사람이 필요한데 그런 교육을 실행할 인력을 양성하는 것 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니 단시간에 성과를 보기 힘들 거 같다. 우리나라같이 국영수를 중시하는 교육을 하는 나라에서는 내가 죽기 전에 과연 가능이나 할까란 의문이 들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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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외국어

2011/08/08 20:24

슬픈외국어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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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8
그래봐야 겨우 4권째 읽지만 하루키의 책은 소설은 안 읽히고 수필은 정말 부드럽고 재미있게 읽힌다. 이 책도 출퇴근 시간에 전철에서의 두 시간만으로 다 읽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먼 북소리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슬픈 외국어도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유럽에서 몇 년을 체류하고 일본에 돌아온지 1년만에 다시 이번에는 미국에 나와, 생활에서 느낀 소소한 일들을 바탕으로 미국 사회를 보는 그의 시선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먼 북소리와 다른 점은 유럽에서와 달리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았고, 비록 거대하지만 미국이라는 한 나라에서만 지낸 이야기라 조금은 역동적인 면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먼 북소리보다 오히려 좀 더 크게 와 닿은 것이 있는데, 내가 왜 하루키의 수필을 좋아하는가에 관한 이유이다.
첫 번째는 하루키가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것 처럼 외국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때문이다. 제목의 슬픈 외국어는 하루키가 몇 년째 외국에서 지내면서 외국어로 말을 하고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에 대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설명을 하는 가운데 나온 말이다. 그 이유는 외국에서 지내면 자신이 절대적으로 고독해지고, 나약해지는 것을 느끼고 또한 그런 가운데서 좀 더 순수한 내면으로 돌아가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인데, 거기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기분은 아마도 고국을 나이들어 떠나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쉽게 공감을 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두 번째는 하루키가 내가 지향하지만 하지 못하는 스타일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어디를 가든 자신만의 스타일로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는데, 예를 들어 매일 달리기나 수영을 통해 몸을 풀고, 글을 쓰는 시간을 정해 쓰고, 아내와 산책을 하며 장을 보는 등의 소소한 일상을 꾸준하게 반복하는 것이다(먼 북소리에서 자세히 서술했다). 언제나 끊임없이 할 일을 정해 계속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만 하지 못하는 내게는 어느 정도 동경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 중반에 씌여진 책이라 현재의 미국을 반영하지는 못하지만, 당시 일본과 미국의 관계라든지, 이미 당시부터 계속 약해져가던 미국의 경제 상황, 사회 변화에 따른 사람들의 의식 등을 돌아볼 수 있고, 역동적이지 않은 미국 사회의 모습을 보면 일부는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09/09/03 - [Life] - 먼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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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2011/08/07 21:16

정의란무엇인가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지은이 마이클 샌델 (김영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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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8~08.04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찾아보니 인문서로는 정말 드물게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많이 팔렸단 기사는 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책의 내용은 정의에 대한 철학적인 관점을 관점과 그것을 주장한 철학자에 따라 장별로 설명한다. 결국 크게 보면 마지막 장에 씌여있듯이 공리주의적인 관점과 자유지상주의적인 관점, 공동선을 추구하는 관점으로 나눌 수 있고, 저자는 마지막의 것을 선호한다. 그 이유는 앞의 두 가지가 정의의 문제를 계량화하고, 자유의 문제로만 취급해 원칙을 무시하고 문제에 대한 고민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장별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문제를 예를 들어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금융 위기 이후 정부 지원을 받은 월 스트리트의 금융 회사들이 거액의 보너스를 지급한 사례에 대한 설명만 제외하면 대부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런 그의 주장은 어느 시점에 가서는 애매할 수 밖에 없고, 때로는 시간과 장소와 경우와 사람에 따라 적용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도덕과 원칙에 맡기기 때문에 언제나 논란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인간 세상이라는 것이 논란이 없을 수 없으니 가장 현실적이고 때로는 효율적일 수도 있는 방법인지도 모르지만, 대개는 결국 힘을 가진 자들이 결정하는 세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이상적'인 방법으로 정의를 제대로 세울 수 있을지 궁금하기는 하다. 하지만 저자 말대로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니,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
* 훨씬 잘 쓴 서평: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39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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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2011/06/12 23:05

상실의시대:원제노르웨이의숲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 일본소설문학선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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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2
책의 존재를 안 것은 대학 시절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손이 가지 않았고, 어쩐지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여태까지 방치해두고 있었다. 읽으려고 하다가 지난 번 그냥 비행기 안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가져갔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안 좋았던 기억(전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도 아니고, 비행기 안에서 너무 피곤하기도 했고)때문에 선뜻 펼쳐보지 못하다가 언제 읽어도 즐거운, 지난 번 공원에 가면서 가져갔던 '먼 북소리'로 인해 다시 읽을 생각을 하게 되었고 오늘 드디어 읽었다.
와이프의 말처럼 먼 북소리와는 전혀 다른, 유쾌한 구석이 없는 우울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왠지 쉽게 읽혔다. 책을 읽으면서 줄곧 생각했는데, 뒤의 서평이나 여러가지 하루키 현상에 대한 글에서도 나오지만 우선 내용이 누구나 공감하기 쉬운 젊은 시절의 사랑 이야기이다. 일본색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실연에 대한 이야기라 대부분 공감이 간다. 게다가 뒤의 해설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이지만 주요 인물들이 모두 삼각 관계를 이루고 있다(꼭 육체적이 아니라도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시기적으로도 이념의 시기가 끝난 직후, 물질의 시대(?)로 이행하는 시기이기에 젊은 사람들이 공감을 할 만한 요소가 더 크단 생각이 든다. 일본의 70년을 전후로 한 이야기이지만, 사실 시대 배경만 빼고 보면 우리나라의 90년대에 가져와도 전혀 무리가 없다.
읽고 난 뒤 생각은 솔직히 그렇게 오랜기간 베스트셀러가 되고, 세계 각국에 번역 출간될 만큼 명작인지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야 문학 평론을 할 능력은 전혀 없으니까, 당연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매력이 있다는 것 하나는 확실한 거 같다. 그리고 주인공이 회상을 하며 시작하는 그 나이가 30대 후반이라는 것도 그 나이가 가까워져 가는 나에게 공감을 주는 또 다른 이유인 것 같다. 또 하나는, '먼 북소리'를 기억해보면 하루키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이 37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10대를 회상하면서 쓰기 시작했을까? '먼 북소리'에서 나오는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정말 잘 겹쳐졌기 때문에 더 쉽게 읽혔던 것 같다. 왠지 대학 때 이 책을 읽었다면 그냥 한 번 읽고 말았을 것 같다. 하지만 30대 중반이 되어 읽은 지금, 왠지 앞으로도 계속 곁에 두게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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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오디세이 4

2011/03/21 17:00

한국사오디세이.4:근현대사
카테고리 역사/문화 > 한국사 > 한국통사
지은이 김정환 (바다출판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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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0~21
4권은 일제 식민 시기와 그 이후 1997년까지의 기간을 다루고 자신의 역사관을 설명하는 부분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저자 스스로도 그렇게 밝히고 있고, 4권을 읽어보면 저자는 확실히 좌파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부분 부분 여전히 좌파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발언들도 있다. 저자의 역사관을 설명하는 마지막 부분은 무슨 소린지 영 알아듣지 못하겠고, 시간이 현대에 가까워 올수록 세계사와 병행 설명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의도(아마 세계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 역사 흐름의 (뒤늦은) 필연성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싶다)는 이해가 가지만 큰 유기성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사실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면 저자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역사서는 존재할 수 없고, 저자의 전체적인 시각이 내 취향에 그리 어긋나지는 않지만, 시인이라서 그런걸까? 일반 독자에게는 너무 과한 예술(적인 서술)에의 (내가 보기에는) 집착이 항상 흐름을 방해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 예술(들)이 새로운 신화로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가상현실의 세계관으로 함몰하고 말 것이다.

이 책의 마무리이다. 저자는 어떤 예술(들)이 21세기의 새로운 신화가 되기를 기대하는 걸까? 어차피 현대의 모든 것들은 시기마다 해체되고 재조립되어 하나의 의미로 남지 못하기에 신화가 될 수 없을 거 같은데. 그렇지 않으면 버려지거나.

2011/03/10 - [Life] - 한국사 오디세이
2011/03/18 - [Life] - 한국사 오디세이 2
2011/03/20 - [Life] - 한국사 오디세이 3

저작자 표시

한국사 오디세이 3

2011/03/20 16:49

2011.03.18~20
3권은 온전히 조선의 몫이다. 3권을 읽으면서는 저자의 서술 스타일에 조금 익숙해지기도 했고, 또 'A=B' 형태의 서술이 좀 줄어들어서 그런지 1, 2권보다는 편하게 읽힌다. 아무래도 시기상 더 가까운데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상대적으로) 수많은 사료가 존재하기에 저자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조금은 적은 탓이 아닌가 싶다. 서론은 조선은 유교가 정치 경제적으로 조선을 규정짓는념이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그 평가를 다음과 같이 내린다.

...삶과 분리된 정치학의 실패라는 점에서 조선사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정치, 경제학의 허점을 예견케 한다. 그러나, 그러므로 조선은 백성의 나라였고, 그 백성이 민중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그들이 한반도의 근대와 현대를 이끌어갈 것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노동자 혁명을 일으킨 소비에트와 위민정치를 내세운 유교 근본주의의 조선은 의외로 비교가 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 않은 정치세력이 역사상 존재했나 싶기는 하지만 백성을 주체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하지만 조선시대의 백성이 민중으로 사회 변혁을 이끌었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동학혁명마저도 내세운 뜻 중 하나가 '...나라를 구하고...'였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시민 혁명이라면 이미 이 시기의 조선은 민중의 타도의 대상이지 구제의 대상일 수가 없는데도 말이다.
읽으면서 또 한 가지 헷갈리는 점이 있는데, 저자의 사관이 보수적인 쪽인지 진보적인 쪽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태종 세종대를 다루면 항상 나오는 것 중 하나는 양녕대군에 대한 이야기이다.

양녕대군이 시와 서에 능하고 무예에 뛰어나고 매 사냥을 즐기고 공부에도 천재였으므로 태종은 이중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이제는 안정을 찾아야 할 때...... 정몽주의 덕이 필요한 때...... 그는 양녕을 정도전으로 보았을까? 아버지의 마음을 익히 이해한 양녕은 갑자기 표변, 행동거지가 거칠어지고 실성한 듯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며 부랑배들과 거리르 쏘다니고 공부를 게을리 하니 슬슬 폐세자 주장이 고개를 들고 태종이 세자를 폐할 것을 거론하자 황희가 반대하고 나섰다.

전형적인 정권 선전(?)용 입장의 기술이다. 임진왜란 시기의 선조에 대한 서술을 다음과 같다.

... 왕위에 오른 선조는 즉위 초부터 학문에 정진했고 훈구세력을 물리치고 사림들을 대거 기용, 특히 이황과 이이, 성혼 등을 극진히 예우하면서 침체된 정국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최근에 씌여진 책 중에서 이렇게 선조를 높여주는 서술을 하는 책은 보기 힘들다(정치적인 목적이 아닌 이상). 정조 독살설을 부정하는 설명을 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하여, 정조 독살설에는, 독살 주체가 없다. 정조는 궁중에 진정한 개혁파를 키우지 않았고 체제 온존 보수파는 그를 독살할 필요가 없었다. 학문주의가 화려하게 치장한 공의 권력이 있었을 뿐이다. 
 
좀 더 낮춰보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이른바 정통적인 역사 서술에서 평가하는 것과 전혀 차이가 없다.
반면에 여기서는 처음에 굉장히 기대를 했다가 계속 읽으면서는 허탈했다.

철학논쟁과 서얼금고의 배경은 놀랍게도, 가장 아름다운, 황진이 생애와 문학의 장이다.

이런 식의 입장도 있었나? 하면서 기대를 가지고 읽었으나 그 뒤는 흐지부지. 황진이와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원균에 대한 서술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여러 면에서 이순신과 비교될 운명인 원균은 명장이었고 같은 여진족 전공 신립과 달리 해상전에도 능하고 왜구에 강했다. 결코 비겁한 사람은 아니고, 이순신과 달리 명예욕을 초탈하지 못했으나 당시 당쟁을 일삼던 대신들보다는 나았다.
 
물론 박정희 시대에 정치적으로 조작되었다는 입장도 있기는 하지만 원균은 사실만을 쫓아가도 이론의 여지가 없는 구국의 용장을 모함해 나라를 완전히 없앨뻔했던 간신이자 소인배에 불과하다(그 와중에 당쟁으로 이용해 유성룡을 파직시켰던 자들도 포함해서). 이전에 공을 세웠던 것은 맞지만 그 뒤의 행적을 덮을만한 큰 공도 아니다.

즉 내가 보기에는 전체적으로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혁신적이고 어떤 부분은 너무 고루해서 왔다 갔다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논란이 더욱 증폭될 수 밖에 없는 근현대사는 과연 어떤 입장에서 서술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저자의 스타일에 내가 넘어간걸까 -_-?

2011/03/10 - [Life] - 한국사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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