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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우천염천

halatha 2017. 12. 27. 00:50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72324850


하루키의 책답게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내용은 한 마디로 그리스와 터키에서의 고생기로 요약할 수 있다.

유럽 여행할 때 그리스에 가면 가장 가고 싶었던 장소가 아토스였는데, 일정이나 거리 문제로 가지 못해 늘 아쉬웠는데, 책을 읽으면 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하루키가 고생을 했다. 비록 30년 전 이긴 하지만, 차량은 거의 이용하지 못하고 계속 산을 걸어서 이동하면서(심한 날은 엄청난 비를 맞으면서 10시간을 이동), 먹을 수 있는 건 우조, 그리스식 커피, 루크미(달콤한 젤리), 곰팡이 핀 딱딱한 빵 뿐이니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물론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고 편한 잠자리에서 늦잠을 자는 것도 전혀 허용되지 않는 환경이다. 그리스 정교가 세상의 중심인 수도원들을 다니는 중이니까. 그래도 아토스에서의 하루키는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충만한 느낌을 갖고 있다.

하지만 터키에서는 여행을 좋아하는 하루키임에도 그리 즐겁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쿠르드족 반군을 마주쳤을 때는 어느 정도 두려움을 가졌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그런 상황(화학전에 당해 자신들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고 싶지만 알리지 못하는)에 놓인 사람들의 절박함에서 나오는 날카로움은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을 해도 다가갈 수 없는 영역에 있을테니. 터키편은 이런 조금은 우울한 내용도 그렇고, 왠지 글 자체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채 끝난 느낌이라 그리스편에 비해 조금은 불만스러웠다.

하루키의 여행 수필을 보면 잡지사 기고글을 모아놓은 책이 많다. 이런 경우도 재미있지만, 나는 역시 먼북소리처럼 장기로 지내거나 여행을 하는 경우가 좀 더 재미있었는데, 이번에는 약간 아쉬웠다. 아무래도 터키편이 뒤에 있고, 마무리가 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차라리 터키 - 그리스 순서였으면 분위기도 그렇고 좀 더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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