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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흙

halatha 2022. 6. 7. 22:05

르네상스, 상상과 현실의 세계

상상력으로 경계를 넘어라 헤르메스

소용돌이치는 운명에서 인간애를 기억하라 르네상스의 머릿결

인간은 소우주다 다빈치의 인체도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라 세계지도

자발적으로 변신하라 성형수술

회복을 향한 열망의 에너지 마스크팩

생명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르네상스 정원

예술은 삶으로 완성된다 렘브란트의 유리잔

거칠고 험한 파도의 주름을 즐겨라 해마를 찾아서

고대, 상상의 세계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게임의 법칙

판타지 없는 백성은 망한다 플라잉카

“의식이란 무엇일까?” 인공지능

‘데우스 엑스마키나(deus ex machina)’, 그러니까 ‘기계 장치로부터 온 신’에서 따온 말인데, 원래 그리스 비극이나 희극 무대에서 사용되던 특수효과였다. 연극 전개상 갈등이 고조되어 더 이상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 갑자기 한 배우가 기계 장치를 타고 무대에 등장한다. 이윽고 자신이 신이라고 소개하고선 모든 갈등을 해결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18권, 인간을 닮은 ‘황금비서’

음성서비스

학습 기능

감정 인식

의식인공지능(conscious Al)

불안을 극복하기 위하여 좀비 서사

인간은 불안한 존재다. 21세기 들어 우리가 더욱 불안한 것은 육체와 차이를 보이는 가상화된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가상화된 육체가 현실의 육체와 차이를 보일 때마다 우리는 일종의 현기증과 피로를 느낀다.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결국 가상이 아닌 현실적인 육체를 욕망한다. 극단적 가상화로 치우칠수록 그 반작용은 더욱 거세져서 현실에 있는 육체를 보고 싶어 한다.

기계화의 미래는 ‘배분’ 문제다 로봇

사실 산업혁명기에 일어났던 기계파괴 운동 ‘러다이즘(Luddism)’은 기계 자체라기보다는 그 기술로 인한 이윤의 편향된 배분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이보그다 사이보그

인조인간, 기계인간이라고도 불리는 사이보그(cyborg)는 컴퓨터 네트워킹이나 가상현실을 의미하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유기체를 뜻하는 ‘오가니즘(organism)’에서 앞 글자만 결합한 신조어다.

‘공진화’란 미국 생물학자 폴 얼리치와 식물학자 피터 레이븐이 1964년 출간한 논문에 처음 사용한 용어로 2종 이상의 생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진화한다는 개념이다. 유기체는 환경과 결합하되 확장하고 공격받으며 다양한 형태로 변한다. 하지만 이런 상호작용 내지 인터액티브는 이제 생물학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기계와 생물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이 만든 기계로 해서 인간과 기계 양자가 같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생명체에서만 나온다 안드로이드

안드로이드(android)는 ‘인간(andr-)을 닮은 것(oid)’, 즉 유사 — 인간을 뜻한다. 사이보그가 기계와 인간의 결합인 반면, 안드로이드는 몸 전체가 원형질 세포로 구성된 생물이다. 바이오공학과 나노기술의 발달로 생명체를 설계하는 현대에, 정자와 난자의 결합 없이 체세포에서 새로운 인간 생명체가 나왔다면 그것 역시 안드로이드다.
인간은 ‘자동기계’인가

인간을 하나의 기계로 보되 ‘동일한 것의 반복’이라는 근대적 기계관은 질 들뢰즈(1925–1995)를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게된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기계를 ‘메카닉’과 ‘머신’으로 나누면서, ‘메카닉’은 미리 설계되어 동일한 것을 반복하는 반면 ‘머신’은 이질적인 것들이 계속 섞이면서 항상 새롭게 변형되어 차이를 반복한다고 했다. ‘메카닉’은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는 근대적인 자동기계에 해당한다. 하지만 오늘날 제시되는 기계 개념, 그러니까 정보를 스스로 축적하여 처리하는 인공지능 기술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머신’에 더 가깝다.
질 들뢰즈의 ‘머신’은 인간의 신체와도 매끄럽게 접속될수 있는데, 브루스 매즐리시는 이것을 네 번째 불연속에서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라 말한다.

주체성은 가상과 현실이 결합된 실재에서 증강현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액추얼리티’와 ‘버추얼리티(virtuality), 그러니까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고 이 둘이 종합되어 ‘리얼리티’ 즉 실재를 형성한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실재는 현실과 가상으로 나뉜다. 중세철학에서 ‘가상적(virtual)’이라 할 때는 ‘아직 현실적(actual)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여겼는데, 이 개념으로 보자면 가상은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어떤 것이다.
바로크의 증강현실 ‘아나모르포시스’

도구를 과제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영리한 군중이 반드시 현명한 군중은 아니라는 점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들에 대해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이들이 중요한 사안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 사안들과 그들에 의해 영향 받는 정부 정책들에 관해 토론하지 못한다면 모든 지도자들이 공정한 선거를 통해 선출됐다고 하더라도 민주주의는 공허한 것. 쉽게 조작될 수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 하워드 라인골드, 참여군중에서

육체성을 확인하자! 아바타와 캐릭터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감각의 발견

이제 돈은 ‘숫자’에 불과하다. 급료는 계좌로 입금되고, 필요한 제품은 클릭 몇 번 누르고 카드 몇 번 긁어 구입하다 보니 씀씀이가 날로 헤퍼지는 ‘과잉-긍정’에 빠졌다. 시각과 청각에 대한 편향은 가속화되고 그 외의 감각은 강한 자극에만 반응하여 실제론 둔감해진 상태다. 21세기 과잉에 발맞추기 위한 온갖 ‘가상-화’는 정작 실물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현실에서 실재의 세계로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박물관공포증

추억과 소망을 현재로 가져와라 ‘파사주’의 과자가게

찢어지고 조각난 파편들을 잇자 프랑켄슈타인

근대는 영혼과 육체를 따로 떼어놓고 보는 영육이원론의 전성기였다. 당시 육체는 르네상스 시대와는 달리 분해와 조립이 가능한 듯 보였다. 이런 생각에는 해부학이 한몫했다. 근대의 해부도는 점차 기관과 조직, 세포로 더욱 좁혀지면서 육체가 죽은 물체 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한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육체는 물질에 불과할 뿐 그것을 원하는 대로 변형하고 지배할 수 있는 별개의 자아, 곧 이성이 있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1901–1981)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에게 금지되어 결핍된 것만을 욕망한다. “나는 욕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어떤 육체를 욕망할 때 그것은 금지된 지식에 대한 추구와 관련된다. 과거에는 신체 해부가 금기였지만, 그 금기를 위반했기 때문에 과학은 발전을 거듭했다. 19세기에 나타나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뱀파이어, 늑대인간 등은 모두 금기에 대한 위반과 수용의 서사다.

“나는 세상에 빚과 책임이 있다!” 고흐의 ‘빈 의자’

나만의 향기를 뿜어라 프루스트의 향기

육체의 상품화에 저항하라 초현실주의와 마네킹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1970년 인간이 유사인간에 대해 느끼는 감정 이론을 발표했다. 밀랍 인형과 같은 유사인간을 보고 생기는 호감과 비호감의 그래프를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즉 ‘불쾌한 골짜기’라 하였다. 그래프로 볼 때 그 대상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인간을 닮으면 호감도가 곤두박질친다. 다시 인간에게 익숙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면 호감도는 상승하여 V자형 그래프선을 만든다.

20세기 초에 초현실주의자들이 등장한 이유가 있었다. 19세기 전까지만 해도 기계는 장인의 도구이자 보조물이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기계는 인간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인간이 스마트기기를 만들었지만 그 작동 원리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 기계를 다룰 수가 없으므로 기계의 작동 방식에 자신을 맞추는 것과 같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이 기계의 작동 방식)를 닮아가고 기계는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그래서 인간은 기계의 도구이자 보조물이라는 자각이 시작되었다.

‘놀이’의 주체성을 되찾자 데이터베이스와 그 함정

현재에 집중하라 아포칼립스와 포스트아포칼립스

지속가능한 ‘지구공동체’ 바이러스와 공생

생태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환경인문학과 인류세

공진화를 꿈꾸며 신유물론과의 상상력

인간과 물질은 한쪽만 일방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변화해 가는 ‘공진화(co-evolution)’ 과정을 거친다. 물질의 특성은 분자들의 배치에 따라 달라지는데, 분자의 배치를 바꾸면 목재도 딱딱하게, 금속도 물렁하게 할 수 있다. 인간도 분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10억 분의 1미터인 ‘나노’ 차원에서 배치만 살짝 바꾸면 물질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동일한 법칙이 적용된다. 정통 진화론에서는 서로 다른 종의 개체가 ‘공진화’를 한다고 여기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종들의 변화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다른 생물종 간의 상호 작용을 받아들인다. 이런 공진화는 생물 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인간이 자기가 만든 기계와 상호 작용하면서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도 일어난다. ‘공진화’에서 비로소 인간과 물질의 일원론이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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