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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춤추는 죽음

halatha 2009. 4. 8.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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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진중권의 저서들을 보면 미학의 전반적인 흐름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을 했는지 특정 주제를 가지고 서술을 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물론 이 책 자체는 초판이 나온지 벌써 7년이 됐지만). 그가 미학 오디세이를 처음 쓴 것이 90년대 중반이었으니 벌써 10여년을 훌쩍 넘었다. 강산이 한 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동안 사람들 - 물론 그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 - 의 머리 속에 미학이 어떤 것인지 기본적인 설명은 했다고 생각하는 듯 싶다. 이제는 개별 주제를 통해 심화 학습을 할 차례인 것이다.

제목처럼 춤추는 죽음은 죽음에 관련된 미술 작품들을 통해 죽음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자세에 대해 설명한다. 처음에는 죽음에 대한 자세, 공포, 두려움 등은 다들 같은 감정이지 않나 생각을 했었는데, 잠시 후 그것이 아님을 바로 깨달았다. 로마에 대한 책을 읽다 보면 종종 유머를 사용한 묘비명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었는데, 이런 것이 전반적인 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시의 사람들은 최근의 우리들처럼 죽음에 대해 겁을 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 착안해 이미 죽음을 분석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라는 사람이다(역시 현대 철학의 흐름은 프랑스에서...). 그의 저작을 기반으로 진중권이 죽음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에 대해 쓴 것이 바로 춤추는 죽음이다. 언제나 그렇듯 그의 글은 읽는 동안 지루함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죽음에 대한 표상이 나타나는 그림들, 예를 들어 홀바인의 대사들 뭉크의 절규등, 에 대한 분석을 시대적인 죽음에 대한 자세와 연관시켜 설명해주는 부분들은 정말 재미있고, 읽다보면 서서히 변해가는 의식의 흐름이 예술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러면서도 서양 예술은 언제나 그렇듯 기독교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알면 참으로 놀랍고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에 대한 부분이었다. 톨레도에서 이 그림을 볼 때는 설명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림에 대한 지식이 너무 얕은지라 그냥 그림이 웅장하구나 생각만 했는데(실제로 보면 한쪽 벽면을 가득 메워 엄청나게 크다. 마치 렘브란트의 야경처럼), 도상학적 분석부터 정치적, 역사적인 의미까지 설명을 읽고나니 아 정말 그렇구나 하면서 다시 한 번 톨레도에 가서 보고 싶다는 열망이 끓어올랐다. 또 하나 그의 책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행간을 감도는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말투이다. 종종 한국의 상황과 연관을 시켜 부분 부분을 종결시키곤 하는데, 재미가 있으면서도 씁쓸한 것이 마치 99%의 다크 초콜릿을 먹는 듯 하다.

그의 다음 행보는 어디로 향할까. 오늘도 나는 그의 신작을 기다리며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씨줄과 날줄을 엮어 나의 의식 세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를 기다린다. 비록 내 인식으로는 겨우 문 앞에, 아니 저런 문도 있구나 하는 정도에 그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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