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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오디세이

halatha 2011. 3. 11.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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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3~10
한국사 오디세이 1

뉴욕에 온 이후 처음으로 한글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 가서 카드를 발급받고 한국 관련 책을 훑어보는 중에 좋아하는 분야인 역사책이라 별 생각없이 선택했다.
저자는 시인이자 평론가로 재미있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역사책을 쓰기위한 시도로 집필을 했다고 한다. 1권을 읽고나서 생각을 해보니 그래서 오디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트로이 전쟁 후 수십년을 지중해를 떠돌다가 결국 집에 돌아가는 오디세이처럼 독자가 한국사를 탐험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연대기적이고 딱딱한 역사책에서 탈피하기 위한 모습이 계속 나타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국사가 선택과목이 되면서 아예 한국 역사에 대해 수업조차 받지 않는 시대가 되었는데(개인적으론 참 어이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스타일의 책이라면 그나마 역사에 대한 '재미없다'는 선입관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반면에 몇 가지 단점도 눈에 띈다. 오디세이라는 제목처럼 한국사를 탐험하는데, 어쨌건 먼저 개인적인 탐험을 해서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자이므로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가 너무 강하게 베어있다. 예를 들어 고구려 멸망 후 고선지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을 한다.

고선지야말로 고구려의 그 후, 아니 '고구려=그 후'다. 많은 역사가들이 고선지를 세계사상 가장 천재적인 전략가로 평가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탈라스 전투에서 중국 종이 제조법이 유럽에 전해진 것이다. 751년 사라센에 잡힌 중국포로 중에 종이 기술자가 있었던 것. 고선지는 자신의 무공으로 세계 문명 발전에 기여했다. 고구려의 희망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솔직히 이 부분은 읽으면서 도대체 뭘 이야기하자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일단 고선지가 가장 천재적인 전략가로 평가한다는 이야기는 내가 읽었던 몇 권의 역사책에서는 전혀 나온 바가 없다. 솔직히 고선지가 언급된 책 자체가 별로 없다. 종이 제조법이 유럽에 전해진 것은 정말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고선지가 여기에 자신의 무공으로 세계 문명 발전에 기여한 부분은 무엇인지 정말 알 수가 없다. 기껏 전쟁하러 나갔다가 패배한 것이 그의 공인가? 종이 제조법을 전수하기 위해 일부러 패배했는가? 게다가 거기에 고구려의 희망이 실현된다는 건 또 어떤 이야기일까? 이 단락은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단점이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1) 안 그런 듯 보이지만 은근히 민족주의 강조
2) 저자 개인의 견해가 일반적인 평가로 전이
사소한 듯 보이는 사건을 생략하는 것이야 당연히 사건의 경중에 따라 저자가 가감을 하는 것이 맞고, 원래 책 자체의 목적이 연대기적 서술이 아니므로 시간 순서가 조금씩 왔다갔다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런 점은 이 책의 목적이 어디까지나 '역사' 이야기이므로 잘못된 역사관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이없는 사극의 역사 왜곡을 생각하면 애교에 불과하지만). 그 밖에 저자의 습관으로 보이는데 'A=B' 형식의 서술이 정말 많은데 문제는 왜 A=B인지 그냥 봐서는 절대 모르겠고 설명도 없다는 것이다. 독자에게 생각해보라는 의도에서 넣었다면 설명이 없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거슬리는 서술방식이다.
또 하나 1권에서는 통일 신라 초기까지가 기술되는데, 스스로도 가야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언급하면서 여전히 삼국시대라는 틀에 얽매인 것이 조금 불만이었다. 사실 흔히 생각하는 삼국 시대의 기간이 정말 짧기 때문에 이것은 주류 역사계의 의도적인 잘못된 명칭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차피 기존의 역사틀에 얽매일 것이 아니었으면서도 이 부분은 그냥 사용한 것은 아쉬웠다.
쓰고보니 단점 위주의 평이 되었는데, 그래도 일반적인 연대기식의 역사서에 비교하면 재미가 있다. 그 점이 아무래도 이 책의 최대 장점일 것이다. 그래서 한 번 끝까지 읽어볼 생각이다. 전체적인 평가는 그 뒤에 해도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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